스파이? 프로코피에프 이야기 천재 작곡가의 아내는

프로코피에프의 아내는 스파이?

저 | 정은주의 음악칼럼니스트 정은주의 클래식 수다 가볍고 즐거운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나눕니다.

©위키백과 자신만의 예술세계 확고한 프로코피에프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러시아 음악사의 위인이자 20세기 음악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음악가입니다.
1921년 앙리 마티스가 그린 프로코피예프의 어머니입니다.
같은해 5월 파리에서 열린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공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초상입니다.
©위키백과 러시아 음악가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나요? 필자는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순으로 생각이 났습니다.
이 세 사람이 러시아 출신 음악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Sergei Prokofiev, 1891-1953)도 러시아 음악가들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20세기 음악사에서도 그렇습니다.
먼저 1919년 프로코피예프가 직접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op.23-5>를 들어보세요. 줄 문양보다 몇 분의 음악이 그가 어떤 음악가인지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19년 프로코피예프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op.23-5>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프로코피예프의 해석이 독특하네요. 템포가 매우 느리게 느껴져 포르테를 포르테보다 작게 연주합니다 YouTube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적인 피아노 작품 중 하나인 <전주곡, op.23-5>가 마치 다른 음악가의 작품처럼 번지지 않았습니까? 프로코피에프가 해석한 라흐마니노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템포가 너무 느리게 느껴져서 포르테를 포르테보다 작게 연주해요. 프로코피예프만의 스타일로 라흐마니노프를 자주 만났다, 그런 느낌이죠.

사실 프로코피에프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어요. 그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음악 공부를 시작했어요. 음악을 사랑했던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죠. 그는 전형적인 영재의 코스를 밟으면서 모스크바 음악원의 유명 교수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조기 입학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피아노, 지휘, 작곡 등 음악의 다양한 분야를 배웁니다.
하지만 그는 학창시절 교수나 동기들에게 거만한 태도를 자주 보였어요. 특히 그의 작곡 스타일에 대해 지적받는 것을 무척 싫어했어요.

그 후 그는 평생 많은 작품을 작곡했고, 특히 뉴욕에서 피아니스트로 사랑받았으며, 고국 러시아에서 세상을 뜰 때까지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또한 그는 발레라는 장르에 큰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아길레프의 발레를 위해서도 많은 음악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 스타일은 불협화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식, 강렬하고 자극적인 요소로 소개될 수 있어요. 다음 영상은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하고 직접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제3번>입니다.
1932년 지휘자 피에로 코폴라가 지휘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프로코피에프가 협연한 음원입니다.
불협화음과 긴장감 넘치는 오케스트라가 러시아적인 인상과 잘 조화를 이룬 작품입니다.
1932년 프로코피에프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그의 피아노 협주곡 3번입니다.
불협화음과 긴장감 넘치는 오케스트라가 러시아적인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 YouTube 리나 프로코피예프의 누명 프로코피예프는 1923년 독일에서 아내 리나 프로코피예프와 결혼했습니다.
둘은 뉴욕에서 처음 만났어요. 당시 리나는 소프라노의 꿈을 키우고 있었어요. 그 후 리나가 독일로 공연을 갔을 때 다시 만나서 둘은 부부가 되었어요. 이후 이들은 남편의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와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예술가 남편을 둔 아내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리나는 남편 때문에 아주 힘든 결혼 생활을 했어요. 젊은 여성과 바람을 피운 프로코피예프에게 나와 이혼하지 않겠다면 계속 그 여자를 만나도 좋다는 말조차 하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코피예프는 사랑스러운 두 아들과 아내의 약속을 깨고 두 번째 아내와 새 가정을 꾸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리나는 두 아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스위스와 프랑스, 미국 뉴욕에서 자라 남편인 고국 러시아에 정착한 리나. 그는 남편의 바람기에 러시아에서 갈 곳을 잃었겠죠. 물론 작곡가로 성공한 전남편이 보내주는 저작권료 등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마음 놓을 곳이 없었을 테니까요. 또 그는 어려서부터 코즈모폴리탄으로 살았기 때문에 러시아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컸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체제였기 때문에 여러 제약이 있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리나는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유서 깊은 호텔 메트로폴에서 열린 영국대사관 파티에서 대사관 직원 안나 홀드크로프트와 친해졌습니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우정이 리나의 인생을 망가뜨릴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외국어로 된 책, 잡지를 읽고 외국인과 자주 접촉하는 사람들은 당시 러시아 비밀경찰국의 감시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에 대한 감시의 목적은 자국의 정보 등을 외국에 넘기는 일종의 첩자를 색출하기 위해서였죠. 실제로 리나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리나는 자신이 감시 대상이라는 것을 처음에 인지하지 못했어요. 훗날 두 아들에게 들려준 많은 이야기 중에는 전화 도청에 대한 내용도 있었어요. 전화를 걸 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구요. 그러나 그것은 당시의 도청 장치에 의해 들리고 있던 잡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리나의 전화내용을 들어야만 했었잖아요.

결국 1948년 2월 19일 리나는 비밀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리나는 이 날 이전에도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고 회고했습니다.
승강장에서 문이 닫히기를 기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말 문이 닫히는 순간 내려 위기를 넘긴 적도 있고, 입고 있던 웃옷을 골목 코너에서 벗어 뒤따라오던 사람들을 제친 적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큰 불안에 떨었는지 상상도 못하겠어요. 결국 어느 날 밤 리나는 집 전화 한 통을 받고 문을 열어 괴한에게 납치됐고 모스크바 중앙경찰국에서 국가기밀 유출 등 4가지 죄를 이유로 20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간첩으로 낙인찍힌 채 감옥에 보내졌습니다.

리나의 두 아들은 몇 달째 만나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 프로코피예프에게 어머니의 납치 소식을 전했죠. 예상대로 프로코피에프는 냉담한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코피예프는 그 소식을 듣고 집에 있던 외국어 서적과 오해를 살 만한 것들을 오븐에 모두 불태웠어요. 리나의 집안을 샅샅이 뒤져본 경찰이 자신도 스파이로 오해할 만한 작은 단서를 찾지 못하길 바래요. 하지만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는 법입니다.
결국 리나는 20년 중 6년만 복역하고 다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라던 프랑스로 출국하여 런던에서 죽고 프랑스에 매장되었습니다.

“정말 리나는 감옥에서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회고했습니다.
거기서 노래를 부르면서 아픔을 잊을 수 있었대요. 전 남편인 프로코피예프의 부고도 감옥에서 들었는데요. 리나는 그 순간만큼은 통곡했답니다.
훗날 손자들에게는 끔찍했겠지만 위대한 음악가인 남편의 이름,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주니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손자는 할머니 리나의 원통함을 풀어줄 단서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렸어요. 리나가 체포된 후 그의 아파트에서 발견한 악보 속에서 비밀정보가 숨겨져 있었다는 비밀경찰의 허위보고서와 같은 조작된 증거를 발굴한 것입니다.
현재 이 자료들은 프로코피예프 재단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리나가 러시아에서 어떠한 불법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 6년간 억울한 감옥생활까지 리나는 평생 아무도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두 아들과 손자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지요.

마지막으로 프로코피에프의 육성과 소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을 공유하겠습니다.
투버튼 재킷을 입은 채 업라이트 피아노로 선율을 연주하고 맞은편 테이블에서 작곡하는 프로코피예프의 모습까지 프로코피예프를 한 걸음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 YouTube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국내 여러 포털 사이트와 각종 매체 등에서 클래식 음악 콘텐츠를 기획해 연재 중이다.
카카오페이지 신인작가 공모전 2기 당선작가(2019)로 영국 현악전문지 <스트래드> 한국판과 <더 트래블러>, <톱클래스> 등에서 에디터 프리랜서의 에디터로 일했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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